우리는 나아가고 있었다. 그것만은 의심하지 않았다.
배는 컸다. 얼마나 큰지 끝을 본 사람은 없었다. 뱃머리가 얼음을 부수면 발밑이 울렸고, 그 울림이 우리를 깨웠다. 우리는 그 소리를 진보라고 불렀다.
매일 아침 종이 울리면, 우리는 갑판에 줄을 서서 갑판장이 명단 읽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 번호가 불리면 "있음" 하고 답했다. 없는 자의 번호는 갑판장이 건너뛰었다. 우리는 그것도 건너뛰었다.
번호는 태어난 순서가 아니라 줄 선 순서로 받았다. 앞 번호가 죽어도 뒤가 당겨지지는 않았다. 죽은 번호는 죽은 채로 명단에 남았다. 명단은 길었다. 부르지 않는 번호가 부르는 번호보다 많아진 지 오래였다. 갑판장은 죽은 번호들을 빠르게 넘겼다. 빠르게 넘기면 짧아 보였다. 우리는 짧아 보이는 것을 좋아했다.
점호가 끝나면 다 같이 외쳤다. 따뜻한 땅으로. 따뜻한 땅으로. 입김이 허옇게 올라가 돛에 얼어붙었다. 돛은 해마다 두꺼워졌다. 입김이 쌓여 천이 아니라 얼음이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그것을 돛이라고 불렀다. 바람을 받지 못하는 돛이었지만, 부르는 이름까지 바꿀 필요는 없었다.
함교의 유리 아래에 바늘 하나가 있었다. 그것이 우리의 나침반이었다.
그 바늘은 한 곳을 가리켰다. 늘 같은 곳. 우리는 그게 따뜻한 땅이 있는 쪽이라고 배웠다. 배가 왼쪽으로 돌면 바늘도 돌아야 했는데, 돌지 않았다. 어떤 아이가 그걸 보고 물었다. 왜 안 움직여요. 어른들이 웃었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박아 둔 거란다. 흔들리지 않는 게 좋은 거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끄덕였다.
바늘이 얼어붙은 건지, 처음부터 못으로 박은 건지, 아무도 확인하지 않았다. 확인하려면 유리를 깨야 했고, 유리를 깨는 건 규정 위반이었다. 규정은 길었다. 누가 썼는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규정 1조는 규정을 따른다는 것이었고, 우리는 1조를 가장 잘 지켰다.
함장은 가끔 함교에 올라 그 유리를 닦았다. 입김으로. 소매로. 오래. 닦고 나면 바늘이 더 또렷이 보였다. 또렷이 보이는 바늘은 더 믿음직했다. 우리는 깨끗한 유리를 믿었다. 그 아래 무엇이 박혀 있는지보다, 유리가 깨끗한지를 더 자주 보았다.
한 달에 한 번, 우리는 바늘 앞에 줄을 서서 머리를 숙였다. 누가 시작했는지 모를 의례였다. 바늘이 가리키는 쪽으로 몸을 돌리고, 그쪽이 따뜻하다고 한 번 말했다. 따뜻하다. 그쪽은 다른 쪽과 똑같이 추웠다. 우리는 추운 쪽을 향해 따뜻하다고 말하는 일을 잘했다. 오래 해 본 일이었으니까.
날짜를 세는 사람이 있었다. 셋째 갑판의 노인.
노인은 벽에 금을 그었다. 하루 한 줄. 벽이 가득 차자 옆 벽으로 옮겼다. 우리는 노인에게 며칠이냐고 묻곤 했다. 노인은 세지 않은 지 오래라고 했다. 줄만 긋는다고. 도착하면 그때 세겠다고. 우리는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 도착하면 한꺼번에 세는 게 낫지. 그 사이 노인이 둘 죽었다. 우리는 그들의 금까지 마저 그어 주었다.
금은 벽을 다 돌아 처음 벽으로 돌아왔다. 첫 금 위에 새 금이 겹쳤다. 겹친 자리는 검었다. 벽들은 배의 안쪽을 한 바퀴 둘렀다. 그 벽을 따라, 검은 띠도 배를 한 바퀴 둘렀다. 띠가 원을 다 채웠을 때, 우리는 그것을 세월이라고도, 거리라고도 부르지 않았다. 그냥 벽이 더러워졌다고 했다. 누가 닦자고 했다. 노인이 안 된다고 했다. 그건 도착하면 셀 거라고. 우리는 더러운 벽을 남겨 두었다.
식량은 줄었다. 배급도 줄었다. 죽이 묽어진 날, 누가 물었다. 얼마나 더 가면 됩니까. 갑판장이 답했다. 거의 다 왔다. 우리는 안심했다. 거의 다 왔다는 말을, 우리는 입항만큼 좋아했다.
다음 날 죽은 더 묽었다. 같은 질문, 같은 답. 거의 다 왔다. 어제도 거의였고 오늘도 거의인데, 그 둘이 같다는 것이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켰다. 거의라는 말에는 끝이 없었고, 끝이 없어서 편했다. 묽은 죽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그릇째 기울여 마시면서, 우리는 그 말을 곱씹었다. 끝이 있으면 틀릴 수 있지만, 거의는 틀리지 않았다.
배급을 받으러 줄을 설 때 우리는 앞사람의 등을 보았다. 등은 점점 굽었다. 우리는 자기 등은 보지 못했으므로, 우리 등이 굽은 줄은 몰랐다. 굽은 등들이 굽은 등들 뒤에 섰다. 우리의 질서였다.
배에서 아이들이 태어났다. 얼음 밖을 본 적 없는 아이들.
우리는 그들에게 따뜻한 땅을 가르쳤다. 풀이 자라고 바다가 출렁이는 곳. 우리도 본 적 없는 곳이었지만, 가르치는 데는 본 적이 필요 없었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렸다. 노란 해와 초록 들판. 우리는 잘 그렸다고 칭찬했다. 벽에 붙였다. 그림 속 해가, 함교의 바늘처럼, 늘 같은 자리에 떠 있었다.
한 아이가 풀을 초록 대신 회색으로 칠했다. 본 적 있는 색으로 칠한 것이다. 우리는 그 그림을 벽에 붙이지 않았다. 다시 그리라고 했다. 풀은 초록이라고. 아이는 초록을 본 적이 없었지만 초록으로 다시 칠했다. 우리는 그것을 잘 그렸다고 했다. 본 것을 지우고 배운 것을 그리는 법을, 아이는 그렇게 익혔다.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아이들이 자라면 번호를 받았다. 번호를 받은 날, 갑판장 앞에서 손을 들고 맹세했다.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묻지 않겠습니다. 우리는 박수를 쳤다. 우리도 그렇게 컸으니까.
맹세는 두 줄이었다. 처음엔 세 줄이었다고 한다. 가운데 줄이 무엇이었는지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그것을 기억할 사람은 묻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묻는 사람은 점호에 없었다. 기억할 사람이 없으니, 가운데 줄도 명단처럼 건너뛰었다. 두 줄이 더 외우기 쉬웠다. 우리는 쉬운 쪽을 맹세했다.
한번은 빙벽을 만났다. 배보다 높은 벽.
뱃머리를 돌렸다. 한참을 돌았다. 빙벽을 끼고 돌고 돌아 다시 출발한 자리로 왔다. 누군가 어제 부순 얼음 조각을 알아봤다. 같은 자리 아니냐고. 우리는 아니라고 했다. 얼음은 다 똑같이 생겼으니까. 똑같이 생긴 걸 다르다고 부르는 일에는, 우리도 이골이 나 있었다.
그날 밤 함장이 방송했다. 항로에 이상 없음. 우리는 복창했다. 이상 없음. 이상 없음. 옆 사람이 목이 쉬어 기침했다. 나는 그 사람 몫까지 큰 소리로 말했다.
복창에는 박자가 있었다. 이상, 한 박. 없음, 한 박. 발을 굴렀다. 발소리가 모이면 발밑이 울렸고, 그 울림은 뱃머리가 얼음을 부술 때의 울림과 같았다. 우리는 두 울림을 구별하지 않았다. 둘 다 진보라고 불렀다. 발을 구를수록 입김이 짙어졌고, 우리가 만든 울림인지 배가 만든 울림인지는 그 김 속에서 흐려졌다. 울리기만 하면, 나아가는 것이었다.
빙벽은 그 뒤로도 여러 번 나왔다. 늘 같은 빙벽이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매번 새 빙벽이라고 했다. 새 빙벽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멀리 왔다고 느꼈다. 같은 자리를 돌면서, 그렇게 멀리 왔다고 느꼈다.
묻는 자가 하나 있었다.
젊은 정비공이었다. 그는 함교에 올라가 유리를 깼다. 바늘을 손가락으로 밀었다. 바늘은 밀리지 않았다. 박혀 있었다. 못이었다. 그는 그것을 들고 갑판으로 내려와 우리에게 보였다. 보라고. 우리는 보지 않았다. 본 사람도, 못 본 척했다.
목적지가 어딥니까. 그가 외쳤다. 이 배가 어디로 갑니까. 한 번이라도 누가 물어봤습니까.
우리는 그를 둘러쌌다. 천천히. 둘러싼 자리가 좁아지는 동안에도, 그가 쥔 못은 차가워 보였다. 못 쥔 손을 잡아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 차가움이 우리에게 옮겨 올까 봐, 누구도 그의 곁에 서지 않았다.
그는 다음 점호에 없었다. 갑판장이 그의 번호를 건너뛰었다. 우리도 건너뛰었다. 노인이 줄 하나를 더 그었다.
그가 일하던 기관실은 며칠 비어 있었다. 그가 손보던 밸브에서 물이 새기 시작했다. 우리는 다른 정비공을 보냈다. 새 정비공은 밸브를 고치기 전에 먼저 물었다. 앞사람은 어디 갔습니까. 우리는 답했다. 묻지 마라. 새 정비공은 밸브만 고쳤다. 잘 고쳤다. 그는 오래 살았다.
늙은 여자는 외치지 않았다. 유리도 깨지 않았다. 그저 배급 줄에서 옆 사람에게 조용히 말했다. 우리 어머니도 따뜻한 땅을 말했어. 그 어머니의 어머니도. 그런데 아무도 도착한 사람은 못 봤지. 옆 사람은 죽을 입에 넣었다. 묽은 죽이었다. 옆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묽은 죽을 넘기는 일에 입이 필요했으므로, 말할 입이 없었다.
여자는 그날 밤에도 살아 있었다. 다음 날도. 그러나 아무도 여자 옆에 서지 않았다. 배급 줄에서 여자의 앞뒤로 한 칸씩 비었다. 여자는 그 빈자리 가운데서 혼자 죽을 먹었다. 비운 자리를, 우리는 질서라 여겼다. 며칠 뒤 여자의 번호도 부르지 않게 되었다. 갑판장이 건너뛰었는지, 여자가 스스로 답하지 않았는지는 모른다. 우리는 알아보지 않았다. 알아보는 것은 그 옆에 서는 일이었고, 우리는 그 자리를 메우지 않았다.
여자가 옳았는지 그른지를, 우리는 한 번도 따지지 않았다. 옳고 그름은 도착하면 따질 일이었다. 노인이 줄을 또 그었다.
거짓을 지키는 데도 일손이 들었다.
유리를 가는 사람이 있었다. 깨진 유리는 늘 새것으로 갈렸다. 새 유리는 어디서 왔을까. 배 어딘가에 유리 만드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평생 유리만 만들었다. 자기가 만든 유리가 무엇을 덮는지는 묻지 않았다. 그는 좋은 유리를 만들었다. 깨끗하고, 평평하고, 잘 깨지지 않는 유리. 잘 깨지지 않는 유리일수록 좋은 유리였다.
명단을 베껴 쓰는 사람도 있었다. 명단이 길어지면 종이가 닳았다. 닳은 종이를 새 종이에 옮겨 적었다. 옮길 때 부르지 않는 번호는 옮기지 않아도 되었으나, 그는 다 옮겼다. 죽은 번호까지 한 자도 빼지 않고 옮겼다. 그래야 명단이 길었고, 길어야 우리가 많아 보였고, 많아 보여야 우리는 외롭지 않았다. 그는 외롭지 않게 해 주는 일을 했다. 평생.
종을 치는 사람은 종만 쳤다. 아침마다 한 번. 종소리가 울리면 우리는 깼고, 깨면 줄을 섰고, 줄을 서면 답했다. 종 치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시작시키는지 몰랐다. 그냥 정시에 줄을 당겼다. 정시를 어떻게 알았느냐 하면, 바늘이 같은 곳을 가리킬 때가 정시였다. 바늘은 늘 같은 곳을 가리켰으므로, 언제나 정시였다. 그는 아무 때나 종을 쳐도 되었다. 그래도 늘 맞았다.
이들 중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유리를 만들고, 명단을 옮기고, 종을 쳤을 뿐이다. 거짓은 누가 말한 게 아니라, 우리가 나누어 든 것이었다. 한 사람이 다 들기엔 무거웠을 것이다. 나누어 드니 가벼웠다. 가벼워서 우리는 그것을 들고 있는 줄도 몰랐다.
함장은 그날도 함교에 올랐다.
깨진 유리를 새것으로 갈았다. 바늘을 다시 박았다. 같은 곳을 가리키게. 그는 그 일을 잘했다. 오래 해 온 사람의 손이었다.
함장의 탁자엔 해도가 펼쳐져 있었다. 우리 중 하나가 청소하다 본 적이 있다고 했다. 거기엔 바다뿐이었다고. 어디에도 땅은 없었다고. 우리는 그 말을 한 번 듣고 잊었다. 우리는 그가 우리를 어디로도 데려가지 않는다는 걸, 어쩌면 알았다. 알면서, 종이 울리면 줄을 섰다.
함장도 늙었다. 유리를 닦는 시간이 길어졌다. 바늘을 박는 손이 떨렸다. 어느 날 그가 함교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우리는 새 함장을 세웠다.
새 함장은 지난해 침수된 셋째 갑판에서 아이 넷을 업어 올린 사람이었다. 마지막 아이를 데리고 나올 때 문에 손이 끼었다. 손가락 둘은 아직 굽혀지지 않았다. 아이들의 부모가 먼저 그를 추천했다. 우리도 찬성했다.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리를 닦는 것이었다. 굽지 않는 손가락 사이에 천을 끼우고 오래 문질렀다. 바늘은 그대로 두었다. 셋째 갑판에서 올라온 아이가 함교 문틈으로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는 아이에게 손을 흔들었다.
따뜻한 땅으로. 우리는 외쳤다. 입김이 돛에 얼었다. 발밑이 울렸다. 우리는 그 울림을 진보라고 불렀다.
바늘은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도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그것을 도착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뿐이다.
아침이 왔다. 종이 울렸다. 우리는 답했다.
있음. 있음.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