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oworld

잔불

THE LAST EMBER
다섯 번째 이야기 · 네 곳에서 주운 물건들
수록곡 · 다섯 번째 이야기이 이야기의 음악은 준비 중입니다.

당신에게.

마른 꽃 한 송이, 검은 빵 한 조각, 한 장이 찢긴 일지, 굽은 바늘 하나를 책상에 놓았다. 등은 오른쪽에 두었다. 종이 위로 그을음이 떨어져 조금 멀리 밀었다.

어디서부터 적어야 할지 몰라 날짜부터 쓰려 했다. 날짜를 모르겠다. 창밖에는 눈이 내린다.

나는 그 배에 탔던 사람이다.

이 말을 먼저 적고 나니 다음 줄로 내려갈 수 있었다.

정비공이 함교에서 바늘을 뽑아 왔을 때, 나도 그를 둘러싼 사람들 사이에 있었다. 그는 못처럼 굽은 것을 내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다. 보라고 했다. 나는 보았다. 다른 사람이 내 어깨를 밀자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정비공이 뒤로 물러섰다.

다음 점호에서 그의 번호는 불리지 않았다. 내 번호에는 대답했다.

바늘은 그날 새벽 갑판 틈에서 주웠다. 왜 주웠는지는 모르겠다. 손을 내밀었어야 할 때는 주머니에 넣어 두고, 아무도 없는 갑판에서는 장갑까지 벗었다. 끝이 살을 찔렀다. 피가 조금 났다.

배에서 내릴 때도 가져왔다. 옷을 기워 입는 동안 주머니를 두 번 바꿨고, 바늘은 늘 새 주머니로 옮겼다.

꽃은 화덕의 재 속에 있었다.

검은 땅이 끝나는 곳에서 밤을 기다렸다. 광장에는 사람들이 둘러앉아 있었다. 한 여자가 아이의 그릇을 받아 식혀 주었다. 아이가 고개를 돌리자 여자는 숟가락을 들고 기다렸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것을 알아채고도 숟가락을 내려놓지 않았다.

사람들이 들어간 뒤에 화덕으로 갔다. 꽃잎은 한쪽만 남아 있었다. 줄기에 묶인 실을 잡아당기자 재 속에서 작은 흰 조각이 따라 나왔다. 꽃과 떨어뜨려 다시 묻었다.

기록에는 처음에 '사람을 태우는 마을'이라고 썼다. 그 아래에 그릇을 식히던 여자도 적었다. 두 줄을 나란히 놓으니 어느 쪽도 지울 수 없었다.

새벽에 여자가 문을 열었다. 들어와 몸을 녹이라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다, 손이 너무 시려서 그릇만 받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여자는 잠깐 나를 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 그릇을 받아 들고도 나는 문턱을 넘지 않았다.

부두에서 주운 빵에는 한 입 베어 문 자국이 있었다.

배가 떠난 자리마다 천과 신발이 남아 있었다. 그중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빵을 나눠 주는 남자가 있었다고 들었다. 먹을수록 심장이 언다는 말도 들었다.

껍질을 조금 떼어 보았다. 안쪽은 아직 부드러웠다.

이걸 먹은 사람을 살렸다고 적었다가 멈췄다. 죽였다고 적으려 해도 펜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 사람에게 물어야 했다. 언제부터 알았는지. 알고도 왜 받았는지. 나는 그를 만나지 못했다.

빵을 종이에 쌌다. 흘린 부스러기는 버리지 않고 함께 넣었다.

등대 계단은 백아흔 개였다.

일지는 책상에 펼쳐져 있었다. '보고 싶은' 다음이 비어 있었고, 마지막 서명도 비어 있었다. 가운데에는 기름과 심지와 무사히 떠난 배들이 적혀 있었다.

누가 이걸 읽거든, 빈칸은 그냥 두시오.

나는 거기에 이름을 쓰려 했다. 모르면 하나 지어도 된다고 생각했다. 글자 하나를 쓰고 나서, 이 사람이 그 이름에 대답할까 싶었다.

잉크가 마르기 전에 문질렀다. 얼룩만 커졌다.

옆 종이에 '등대에서 발견한 일지'라고 적었다. 아래에 발견한 장소와 불이 꺼져 있던 것을 적었다. 이름을 아는 사람을 만나면 물어보려고, 종이 끝에 한 줄을 남겨 두었다.

내가 지운 글자의 흔적은 그대로 뒀다.

네 물건을 늘어놓고 쓰다 보니 등잔의 기름이 줄었다.

정비공의 번호를 적으려다 또 막혔다. 얼굴과 목소리는 기억하는데 번호가 생각나지 않는다. 내 번호는 아직 기억한다. 소리 내어 말해 보았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주머니에서 바늘을 꺼내 일지 옆에 놓았다. 오늘 처음 내려놓는 것처럼 손이 허전했다.

창밖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바람에 덧문이 부딪히는 줄 알았다. 다시 났다. 세 번이었다.

문을 열자 누군가 등을 돌리고 서 있었다. 잘못 찾아왔다고 했다. 이곳은 불이 켜져 있어서, 사람이 있는 줄 알았다고.

사람이 있다고 대답했다.

낯선 이는 문턱을 보았다. 나는 책상 앞 의자에서 물건을 치웠다. 앉으라고 하려다 먼저 이름을 물었다. 바람 때문에 잘 들리지 않아 한 번 더 물었다.

그는 같은 이름을 다시 말했다.

편지를 끝내지 못한 채로 둔다. 물을 데워야 한다.

꽃은 상자에 넣고 빵은 종이째 접었다. 일지의 빈칸은 그대로다. 바늘은 덧문이 닫히지 않게 틈에 끼웠다. 돌아갈 때 빼 달라고 부탁했다.

아직 밖에서 들어오는 바람이 차다.

등을 의자 쪽으로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