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oworld

검은 빵

A COLDER MERCY
두 번째 이야기 · 어는 심장 · 검은 빵
수록곡 · 두 번째 이야기이 이야기의 음악은 준비 중입니다.

나흘째 되는 날, 그는 자기 손가락을 셌다. 열 개였다. 열 개나 남은 게 좀 아까웠다.

쇄빙선이 그를 부두에 내려놓고 다시 얼음을 부수러 갔다. 표 살 돈이 없으니 다음 배는 없었다. 그는 등대 아래 돌계단에 앉아 바다가 어는 걸 봤다.

돌계단 아래 얼음 속에 네모난 판이 박혀 있었다. 한때 글자였을 것이 다 깨졌고, 귀퉁이에서 죽은 빛이 가끔 한 번 깜빡였다. 청색이었다가, 분홍이었다가. 누가 박았는지, 무슨 글자였는지 그는 궁금하지 않았다. 궁금증은 칼로리를 썼다. 바다는 소리 없이 얼었다. 굶는 것도 그랬다. 처음엔 위가 비틀렸고, 그다음엔 조용해졌다. 조용한 쪽이 더 나빴다. 위가 자기를 포기한 거니까.

배에서 같이 내린 둘은 하루 먼저 조용해졌다. 그는 부러워하지 않으려 애썼다. 부러워할 기운도 없었다.

그중 하나는 첫날 자기 신발을 그에게 줬다. 발이 더는 시리지 않다면서. 무슨 뜻인지 그때는 몰랐다. 둘째 날 그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았다. 셋째 날엔 사람보다 가벼운 무게만 남았다. 그는 그 신발을 신었다. 죽은 자의 호의는 받기 쉬웠다. 갚을 일이 없으니까. 산 자의 호의가 무거웠다. 언젠가 갚아야 했고, 갚을 게 없는 자에겐 빚만큼 무서운 게 없었다.

굶는 데에도 절차가 있었다. 첫날엔 부두를 돌며 버려진 그물을 뒤졌다. 비늘 하나 없었다. 굶은 손이 먼저 지나간 자리였다. 둘째 날엔 생각을 줄였다. 생각은 칼로리를 썼다. 셋째 날엔 추위가 생각보다 친절한 걸 알았다. 추위는 아픔을 마비시켰다. 굶주림이 안에서 갉으면 추위가 밖에서 그 자리를 얼렸다. 우스웠다. 웃을 기운은 남겨 두지 않았다.

등대 불빛이 일정한 간격으로 돌았다. 한 바퀴, 또 한 바퀴. 그는 그 간격을 셌다. 셀 게 그것뿐이었다. 부두엔 다른 굶는 자들도 흩어져 앉아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말은 온기를 썼고, 온기를 빌려줄 부자는 없었다. 굶는 자들은 서로를 보지 않는 법을 가장 먼저 배운다. 보면 나눠야 할 것 같으니까.

다섯째 날 밤, 누가 그의 어깨를 흔들었다.

키 큰 남자였다. 외투가 길고 검었고,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손에 천 꾸러미를 들었다. 천을 풀자 빵이 나왔다. 검은 빵. 주먹만 한, 껍질이 숯처럼 검은, 김 나는 빵.

빵 냄새가 그의 무릎을 꿇렸다. 다리가 알아서 접혔다.

"먹어." 남자가 말했다.

그는 받았다. 뜨거웠다. 손바닥이 데도 놓지 않았다. 한 입 베어 물자 검은 껍질이 부서지고, 안쪽은 따뜻하고 촉촉했다. 살면서 먹은 무엇보다 좋았다. 거의 삼키듯 먹었다.

다 먹고 나서야 가슴께가 서늘했다. 더운 빵을 먹었는데 갈비뼈 안쪽 한 점이 차가웠다. 얼음물을 삼킨 것처럼. 이상했지만 배가 불렀다. 그는 그 느낌을 미뤄 뒀다. 배부른 사람은 너그럽다.

남자는 어둠 속에서 그가 먹는 걸 봤다. 다 보고는 돌아섰다.

"내일도 와." 남자가 말했다.

내일도, 라는 말이 좋았다. 내일이 있다는 뜻이었다. 굶는 자에게 내일은 사치였다. 그는 그 사치를 받았고, 대가는 묻지 않았다. 받을 때 묻지 않는 것. 그것도 굶어 본 자의 기술이다.

남자는 매일 밤 왔다. 매일 검은 빵 하나.

오는 시각은 일정하지 않았다. 어떤 밤은 등대 불빛이 세 바퀴 돌기 전에 왔고, 어떤 밤은 그가 거의 포기했을 때 왔다. 그는 늦는 밤이 싫었다. 늦으면 안 올지도 몰랐고, 그 생각이 들면 가슴의 찬 점이 욱신거렸다. 그래서 빨리 오기를 빌었다. 누구에게 비는지는 몰랐다. 빌 데가 있다는 건 아직 따뜻한 데가 남았다는 뜻이었지만, 그는 그 온기를 자기 것으로 읽지 못했다.

어떤 밤은 빵이 작았고 어떤 밤은 컸다. 작은 밤에 그는 화가 났다. 굶다 살아난 자가 빵 크기에 화를 내는 게 우스운 줄 알면서도 화가 났다. 다 먹고도 천에 붙은 부스러기를 떼어 달라고 했다. 남자는 손톱으로 천의 접힌 곳을 긁어 그의 손바닥에 털었다.

그는 며칠 만에 일어서 걸었다. 손가락 끝에 감각이 돌아왔다. 다른 굶는 자들이 그를 봤다. 너는 뭘 먹느냐는 눈으로.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나눠 줄 만큼이 아니었으니까. 딱 하나였으니까.

한번은 부두 끝의 여자가 그의 소매를 잡았다. 손이 얼음 같았다. 한 입만, 이라고 입 모양으로 말했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그는 자기 손의 빵을 봤고, 여자의 손을 봤다. 한 입을 떼면 자기가 한 입만큼 일찍 조용해질 것 같았다. 계산은 빨랐다. 그는 손을 빼고 돌아앉아 등으로 빵을 가렸다.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미안함도 온기였고, 그는 그걸 빌려줄 부자가 아니었다.

다음 날 아침 여자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조용히. 그는 그쪽을 보지 않고 빵 냄새가 오는 밤만 기다렸다.

찬 점은 사라지지 않았다. 빵을 먹을 때마다 조금씩 커졌다. 손바닥만 해졌다가 주먹만 해졌다. 숨을 깊이 쉬면 그 자리가 시렸다. 심장 뛰는 게 전보다 멀게 느껴졌다. 멀고 둔하게. 가끔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차가워지는 데에도 순서가 있었다. 처음 언 건 손끝이 아니라 마음의 어떤 모서리였다. 부두의 여자를 떠올려도 아무 모서리가 걸리지 않았다. 다음은 잠이었다. 잠들 때 추웠던 밤이 줄었다. 추위를 느끼려면 따뜻함을 기억해야 하는데, 기억할 따뜻함이 줄고 있었으니까. 그다음은 시간이었다. 며칠째인지 세는 걸 그만뒀다. 손가락 열 개가 아깝던 날이 까마득했다. 이제는 손가락이 몇 개든 아깝지 않았다.

어느 밤 그는 왼손 두 손가락이 끝부터 까맣게 죽은 걸 봤다. 언제부터인지 몰랐다. 아프지 않았고, 그래서 몰랐다. 남의 손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까만 두 손가락을 한참 봤다. 아깝다는 생각은 끝내 오지 않았다.

그는 무슨 빵인지 묻지 않았다. 묻고 싶은 밤도 있었다. 이게 뭐냐고. 왜 나냐고. 대가가 뭐냐고. 입까지 올라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묻는 건 빵을 못 받을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고, 그는 그 배짱이 없었다. 묻지 않으면 빵은 온다. 그거면 됐다.

한번은 남자의 손을 봤다. 빵을 건네는 손. 손등에 핏줄이 없었다. 돌의 색이었다. 그는 빵으로 눈을 돌렸다. 못 본 척하는 데엔 이미 익숙했다.

겨울이 더 깊어졌다. 등대 불빛이 얼음 위를 핥고 지나갔다.

그는 한번 자기를 시험해 보기로 했다. 어느 밤, 남자가 오기 전에 빵을 받지 않고 버틸 수 있나 보려 했다. 굶주림은 금세 돌아왔다. 위가 다시 비틀렸다. 그러나 이번엔 다른 게 더 빨리 왔다. 가슴 한가운데, 그 찬 점이, 빵을 부르며 시렸다. 굶주림보다 그 시림이 무서웠다. 그는 자기가 빵을 원하는 건지 빵이 자기를 원하는 건지 헷갈렸다.

그 밤에도 그는 손을 내밀었다. 남자가 천을 풀기도 전이었다.

그 밤부터 찬 점은 빠르게 자랐다. 가슴 한가운데가 통째로 찼다. 심장 자리에 돌 하나가 든 것 같았다. 빵을 먹으면 잠깐 몸이 더워졌다가, 그 더위가 안쪽으로 빨려 들어 얼음이 됐다. 매일 밤 갈비뼈 안에서 그 일이 일어났다. 느끼면서 그는 손을 내밀었다.

빵을 안 먹으면 죽는다. 빵을 먹으면 심장이 언다. 고르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죽은 자는 빵 냄새를 못 맡는다. 그는 아직 맡았다. 그게 살아 있다는 뜻이라면, 그는 살아 있었다.

그날 다른 굶는 자 하나가 부두 끝에서 조용해졌다. 그는 그쪽을 한 번 봤다. 안됐다는 생각이 들 자리에서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그 자리도 얼어 있었다. 알아채고도 놀라지 않았다. 다시 빵 냄새가 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밤 남자가 왔을 때, 그는 처음으로 남자가 다른 자들 사이를 지나는 걸 봤다. 남자는 조용해진 자들 옆을 그냥 지나쳤다. 빵은 하나뿐이 아닌 듯했다. 천 꾸러미는 두툼했다. 그런데도 남자는 그에게만 왔다. 왜 나냐, 는 질문이 머리를 들었다가 빵 냄새에 다시 누웠다. 그는 받았다. 받는 자는 고르는 자가 아니다. 고르는 건 주는 자의 일이었고, 그는 주는 자의 기준을 알고 싶지 않았다. 알면 빚이 생길 것 같았다. 그는 빚이 무서웠다. 갚을 게 그 손바닥만 한 온기 하나뿐이었으니까.

그는 남자에게 딱 한 가지만 물어볼까 생각한 적이 있다.

당신은 누구냐, 가 아니었다. 무슨 빵이냐, 도 아니었다. 그가 묻고 싶은 건 이거였다. 내가 다 얼면, 그때도 빵을 줄 거냐.

처음 며칠은 묻고 싶은 게 많았다. 왜 하필 나냐고, 다른 자들은 왜 안 주냐고, 저 여자에겐 왜 안 가냐고. 이제는 빵이 오면 받고 안 오면 기다렸다. 묻지 않으니 머리가 가벼웠다. 가벼운 머리로 그는 빵 냄새가 오는 쪽만 봤다. 한때 그는 무언가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언제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묻지 않았다. 답이 무서워서가 아니었다. 답을 들으면 내일 밤 손 내밀기가 어려워질까 봐서였다. 손 내미는 일은 그에게 남은 유일한 일이었고, 그는 그걸 어렵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가끔 다 언 뒤를 그려 봤다. 다 얼면 굶주림도, 시림도 못 느낄 것이다. 남자의 외투 색도, 돌색 손도, 아무것도 묻고 싶지 않을 것이다. 편할 것 같았다. 편한 게 좋은 건지는 따져야 했는데, 따지는 일은 점점 귀찮았다. 까만 두 손가락이 언제 거기까지 왔는지 그는 끝내 몰랐다. 자기 어는 것도 못 챙기는 사람이, 그래서, 묻지 않는 쪽으로 갔다.

남자가 또 왔다. 검은 빵을 풀었다. 김이 올랐다.

그는 가슴 한가운데가 마지막까지 차오르는 걸 느끼며 빵을 받았다. 따뜻했다. 빵은 늘 따뜻했다. 그것만은 변하지 않았다. 그에게 남은 온기는 그 손바닥만 한 하나뿐이었다.

그는 한 입 물었다. 검은 껍질이 부서졌다.

안쪽은, 여전히, 따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