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yunoworld

화덕

THE FIRE EATS WELL
첫 번째 이야기 · 눈이 녹는 마을
수록곡 · 첫 번째 이야기이 이야기의 음악은 준비 중입니다.

얼음이 나를 뱉었을 때, 나는 손가락이 몇 개인지 몰랐다.

빛이 먼저 왔다. 노란빛, 흔들리는, 살아 있는 빛. 그다음 손들이 와서 내 겨드랑이를 끼고, 언 옷을 벗기고, 뜨거운 것을 입술에 댔다. 어떤 여자가 내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들여다보았다. 그 손은 화상 자국처럼 붉었다. 마을 사람들의 손은 다 그랬다. 빨갛게 익은 손바닥.

"또 하나 떠내려왔네." 누가 웃었다. "잘 왔어. 잘 왔어."

지붕마다 눈이 닿기 전에 녹았다. 마을 한가운데 화덕에서 김이 솟았다. 김이 닿는 곳마다 검은 땅이 드러났고, 그 자리를 흰 세계가 에워쌌다. 나는 검은 땅의 따뜻함 위에 누워 처음으로 떨지 않았다.

그들은 나에게 죽을 먹였다. 이름을 물었다. 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럼 우리가 줄게." 한 여자가 빨간 손으로 내 손을 쥐었다. "여기선 다들 새 이름을 받거든."

그렇게 나는 '봄'이 되었다.

처음 며칠, 몸이 내 것이 아니었다.

발가락 두 개가 검었다. 리타는 그걸 보고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다. 더운 물에 천을 적셔 발을 감쌌고, 며칠 뒤 발가락은 제 색으로 돌아왔다. 얼음이 가져갈 뻔한 걸 마을이 도로 빼앗아 온 것 같았다. 나는 그게 고마웠다.

마을엔 나 같은 사람이 더 있었다. 떠내려온 자들. 누구는 한 해 전에, 누구는 세 해 전에 얼음에서 나왔다고 했다. 그들도 새 이름을 가졌다. 물, 종, 재. 뜻을 물으면 다들 비슷하게 웃었다. "받았으니까 쓰는 거지." 그 웃음엔 바닥이 없었다.

그땐 그게 평화로 보였다. 그저 평화로.

물은 나보다 두 해 먼저 왔다고 했다. 나에게 이끼 모으는 법을 가르쳐 준 사람. 마른 이끼는 바위 북쪽에 붙어 있고, 손톱으로 긁지 말고 결을 따라 떼야 부스러지지 않는다고 했다. 물의 손도 빨갰다. 처음엔 안 그랬을 텐데,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러다 그 생각도 그만뒀다.

봄. 이 세계에 없는 단어. 그들은 그 말을 좋아했다. 내가 지나가면 아이들이 "봄이다, 봄이다" 하고 손뼉을 쳤다. 나는 그게 좋았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는 게 좋았다. 부른다는 건 내가 거기 있다는 뜻이니까.

나는 빨리 길들었다. 아침엔 화덕에 넣을 마른 이끼를 모았다. 그게 식구의 일이라 했다. 바위 북쪽을 돌며 이끼를 뜯어 자루에 담았고, 자루가 차면 광장으로 가져갔다. 누군가 그걸 받아 화덕에 넣었다. 받는 손도, 넣는 손도 오래 덴 자국처럼 익어 있었다. 김이 한 번 더 높이 솟았다. 그게 하루의 시작이었다.

낮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마을은 부족한 게 없었다. 죽은 매일 나왔고, 광장은 늘 따뜻했고, 아이들은 살이 올라 볼이 둥글었다. 흰 세계 한가운데 검은 땅 한 조각. 그 한 조각이 이토록 배부른 것이 가끔 이상했다. 그럴 때면 화덕 쪽으로 눈을 들었다가, 솟는 김에 눈이 부셔 도로 내렸다.

저녁엔 다 같이 둘러앉아 죽을 먹었다. 한 사람이 노래를 시작하면 모두 따라 불렀다. 가사는 늘 같았다.

불은 잘 먹습니다, 우리를 잘 먹습니다.
한 입이면 한 계절, 웃는 입이 더 답니다.

나는 뜻을 묻지 않았다. 손이 빨간 여자—리타라고 했다—가 나를 무릎에 기대게 하고 머리를 쓸어 주었다. 그 온기가 너무 좋아서 입을 열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 물으면 이 손이 멈출 것 같았다.

그들은 자주 웃었다. 너무 자주. 죽이 묽은 날도, 노인 하나가 밤새 기침하다 아침에 조용해진 날도, 그들은 더 환하게 웃었다. 그 환함 아래로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마을엔 셈이 있었다.

처음엔 몰랐다. 사람이 줄어드는데 죽은 늘 같은 양이었다. 노인이 조용해진 다음 날, 광장의 자리 하나가 비었는데 아무도 그 자리를 보지 않았다. 빈자리는 곧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사람이 줄어도 자리가 비지 않으려면, 얼음이 계속 누군가를 뱉어 줘야 했다. 떠내려온 자가 끊이지 않는 건 그래서인지도 몰랐다. 나는 그 셈을 끝까지 풀지 않았다. 풀면 추워질 것 같았다.

나보다 한 해 먼저 온 남자가 있었다. 이름은 재. 빨간 손으로 죽 그릇을 받던 그가, 어느 밤 그릇을 들여다보며 작게 말했다. "너무 따뜻하지 않아?" 나는 못 들은 척했다. 재는 다음다음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물에게 재가 어디 갔냐고 물으려다 그만뒀다.

화덕을 처음 제대로 본 건 셋째 달이었다.

이끼를 너무 일찍 모아 새벽에 광장에 나갔다가, 화덕 입구 안쪽을 보았다. 재가 두껍게 깔려 있었다. 그 속에 흰 것들이 섞여 있었다. 곱고, 작고, 둥근. 자갈인 줄 알았다. 손을 넣어 하나 집었을 때, 그게 무릎뼈라는 걸 알았다. 사람의.

나는 그것을 도로 묻었다. 손이 데도록 깊이.

재 속엔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다. 손을 빼다가 더 작은 것들이 손끝에 걸렸다. 손가락 마디 같은 것. 단추 같은 것. 나는 세지 않았다. 헤아리면 그게 사람의 머릿수가 될 것 같아서.

광장이 따뜻했던 날의 수만큼.

뒤에 리타가 서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춥지?" 그녀가 말했다. 내가 본 것을 안다는 얼굴로. 그러나 목소리엔 미안함도, 두려움도 없었다. 그저 따뜻했다. "안에 들어가자. 죽 끓여 줄게."

나는 묻고 싶었다. 저게 누구예요. 왜요. 입안에서 그 말이 얼음처럼 굴러다녔다. 그런데 리타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온기 안에서 질문이 녹았다. 형체 없이. 물처럼.

나는 죽을 먹으러 들어갔다. 그날도 우리는 노래를 불렀다.

그날 이후로 나는 화덕을 다르게 보았다. 다르게 보면서도 똑같이 이끼를 날랐다.

아침마다 자루를 받는 손을 보며, 저 손이 무엇을 넣어 왔는지 이제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자루를 건넸다. 손끝 하나 떨지 않고. 김이 솟으면 광장이 따뜻해졌고, 나는 그 따뜻함을 마다하지 않았다. 마다하려면 떨어야 했다. 떠는 건 내가 가장 잘 아는 일이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일.

물에게 한 번 떠봤다. "이끼만으로 이만큼 김이 나?" 물이 자루를 받던 손을 멈췄다. 잠깐. "이끼는 불씨를 살리는 거야." 그러고는 웃었다. "나머지는 마을이 알아서 해." 나머지. 나는 그 단어를 더 캐지 않았다. 캐는 법을 나는 이미 잊어 가고 있었다.

밤이면 리타가 머리를 쓸어 줬다. 나는 그 손에 기대 눈을 감았다. 떠내려오기 전의 나는 무엇을 물으며 살았을까. 그런 사람이었을까. 기억은 얼음과 함께 떠내려갔다. 남은 건 따뜻함을 아는 몸뿐이었다. 몸은 묻지 않았다. 몸은 그저 데워지길 원했다.

꽃은 계절 끝에 핀다고 했다.

어디서 났는지 모를 마른 꽃—얼음 세계에 꽃이 있을 리 없는데—을 엮어 만든 관을, 그들은 한 사람의 머리에 씌운다. 그 사람을 가운데 앉히고 가장 좋은 죽을 먹이고 밤새 노래한다. 나는 두 번 보았다. 두 번 다, 꽃을 쓴 사람은 다음 날 아침 광장에 없었고, 화덕은 사흘쯤 더 높이 김을 뿜었다. 그 사흘간 마을은 조금 더 따뜻했다. 다들 그걸 알았다. 알면서 더 크게 웃었다.

첫 번째로 꽃을 쓴 사람은 물이었다. 나에게 이끼를 가르쳐 준 사람. 관을 쓴 물의 얼굴은 평온했다. 무서워하지 않았고, 슬퍼하지도 않았다. 가장 좋은 죽을 천천히 떠먹으며 둘러앉은 우리를 향해 웃었다. 받았으니까 쓰는 거지, 하던 그 웃음으로. 나는 물의 빨간 손이 죽 그릇을 감싼 걸 보았다. 처음 마을에 왔을 땐 안 빨갰을 손. 다음 날 아침, 자루를 받는 자리에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나는 이끼를 건넸다. 평소처럼.

두 번째 꽃은 어린아이였다. 그 아이도 다음 날 광장에 없었고, 화덕은 사흘 더 높이 김을 뿜었다. 나는 사흘 동안 따뜻했다.

나는 그 웃음에 끼고 싶었다. 그래서 같이 웃었다.

이번 꽃을 누가 쓸지, 나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는 법을 나는 이제 식구만큼 잘 알았다.

리타가 내 머리에 관을 씌웠다.

마른 꽃잎이 이마에 닿았다. 바스락. 그녀의 빨간 손이 내 뺨을 한 번 쓸었다. 둘러선 얼굴마다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렇게 환한 웃음을 나는 처음 보았다. 가장 환한 그 웃음들이, 이상하게도, 얼음보다 차가웠다.

"봄아." 리타가 말했다. 그 이름을 줄 때와 똑같은 목소리로. "이제 네 차례야." 리타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저 내 뺨에 흘러내린 꽃잎 하나를 손끝으로 떼어 주고 밝게 웃었다. "잘 왔어, 정말 잘 왔어."

그날 밤 나는 가장 좋은 죽을 먹었다. 모두가 나를 위해 노래했다.
불은 잘 먹습니다, 봄을 잘 먹습니다.

죽은 따뜻했다. 내가 마을에서 먹은 어떤 죽보다 따뜻했다. 떠먹을 때마다 둘러앉은 빨간 손들이 박자를 맞춰 무릎을 쳤다. 아이들이 볼을 둥글게 부풀려 노래했다. 그 볼이 무엇으로 둥근지, 이제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죽을 떠먹었다. 한 입이면 한 계절. 나는 몇 계절일까. 그 셈도 풀지 않았다.

나는 묻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왜 나예요. 왜 아무도 안 물어요. 입술까지 그 말이 올라왔다.

그때 리타가 내 손을 잡았다. 셋째 달 새벽처럼, 데인 손을 빨간 손바닥으로 감쌌다. 따뜻했다. 그 온기가 척추를 타고 올라와 혀 끝에 닿았을 때, 이번엔 그게 녹지 않았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리타의 손을 놓으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광장 밖까지는 스무 걸음도 되지 않았다. 그 너머로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가락을 더 세게 쥐었다.

화덕 앞에 섰을 때, 안에서 더운 바람이 얼굴로 불어 나왔다.

오래 떨었던 몸이 그 바람을 기억했다. 얼음이 나를 뱉던 날, 내가 그토록 갖고 싶던 것. 떨지 않는 것. 빨간 손. 불린 이름.

발밑의 재를 나는 보지 않았다. 그 안에 무엇이 곱게 깔려 있는지 알았고, 곧 그중 하나가 될 것도 알았다. 언젠가 새벽에 누군가 흰 것 하나를 집어 자갈인 줄 알 것이다. 그게 나일 것이다. 그 사람도 나처럼 할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었다. 내가 물을 미워하지 않았듯이.

뒤에서 노래가 따라 들어왔다. 광장 가득한 웃음이 내 등을 떠밀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누군가의 빨간 손을, 환한 얼굴을 봐야 했다. 그러면 또 묻고 싶어질 테니까. 묻고 싶지 않았다. 따뜻한 채로 있고 싶었다.

나는 웃었다. 그들이 가르쳐 준 대로, 가장 환하게.

그리고 걸어 들어갔다.

불은, 잘 먹었다.